MISTERY

벌써 3년. 시간 참 빠르다. 늘 그렇듯이, 시간없다는 핑계로, 뉴질랜드로 건너온 이후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조금이라도 글로 적어보겠다는 계획은 그다지 잘 지키지 못한 거 같다. 딸 육아일기도 40주를 채우지 못했고, 포스팅해보겠다던 여러 글들도 여전히 draft 상태에 머물러 있다. 어렸을 적 띠리리이이익~~빼애애액! 하는 모뎀을 통해 접해봤던 커뮤니티, 그 이후의 인터넷 커뮤니티, 채팅, 블로그, 검색엔진, Social media라는 수많은 “공유의 장”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의 귀중한 의견/경험을 구하는 질문을 올리고, 누군가 툭 던지는 남긴 한마디에 감사해하고, 자신의 경험을 정리해서 올리고, 그 글에 좋아해하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보람을 느끼고, 그랬다. 답변/의견/사용기를 가장한 광고, 은어로 포장한 스팸, 블로거지의 사용기를 빙자한 유료 홍보로 더렵혀진 인터넷이지만, 그래도 어딘가에서, 내가 올리는 쓰잘데기없는 글들을 읽어줄 사람들이  있음을, 난 믿는다. 그래서 다시 글을 써본다. 이전에 뉴질랜드 취업기를 쓰면서(그러고보니 1년도 넘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후속글들을 계획했었고, IT종사자가 취득할만한 비자에 대한 글을 이미 써두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양이 좀 부족한듯 해서 회사 경험기를 추가로 써보기로 했다.

 

1.급여

google에 가서 nz it salary만 치면 도움이 될만한 사이트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 absolute it 라는 구인에이젼시에서 발간하는 레포트를 보면 대략적으로 급여 수준을 알 수 있다(추후를 대비해서 2015년 레포트를 첨부한다 : AbsoluteIT-Remuneration-Report-July-2015 ). 내용을 보니 내 경우는 거의 평균 수준으로 보인다. 취직전에 들은 얘기에 의하면, 보통 회사에서는 연별 급여 인상이 그다지 많지 않고, 오직 “이직”을 통해서는 대폭적인 급여 인상이 가능하다고 했다. 사실이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매년 물가인상률 정도의 일률적 급여 인상이 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보너스가 있는데, 개개인별 업무 평가에 따라 다른 금액을 받게 된다. 또한, 승진에 따른 급여인상도 있는데, 경험해보지 못한 관계로 어느 정도 인상되는 지를 모르는 것이 안타깝다. 하여튼, 대폭적인 급여 인상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이직과 승진”뿐이다. 개인적으로 꽤나 친했던 동료 한 명은 부모 초청을 위해 필요한 초청자의 급여 조건때문에 이직을 결정했다.

급여를 생각함에 있어 실수령액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뉴질랜드에는 PAYE라는 소득세+ACC분담금이 부과(Tax rate calculator)되는데, 10만불 급여 소득자의 경우 2016년에 다음과 같은 세금을 낸다.

Tax calculation for individual – 1 April 2015 to 31 March 2016
– $14000까지 :10.5% –> $1,470.00
– $14000 ~ $48000 : 17.5% –> $5,950.00
– $48000 ~ $70000 : 30% –> $6,600.00
– $70000 넘는 금액 : 33% –> $9,900.00
– 총합 $23,920

허거걱, 10만불 받았는데 약 2만 4천불이 세금이다. 세금 이외에 Kiwi Saver(개인 연금 성격)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급여의 4%가 차감되므로 대략 4000불이 차감되어, 실제 수령액은 약 72000불이 되고 월 6000불이 된다. 그나저나 10만불이라는 금액은, 그저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해  예를 든 금액일 뿐(물론 받고 싶긴 하다), 내가 받는 연봉은 아니다.

2.휴가

샐러리맨의 3대 마약은 월급, 휴가 그리고 승진이다. 급여를 얘기했으니 휴가에 대해 얘기해보자. 보통 Annual leave(유급 연차 휴가)와 Sick leave(유급 병가)를 쓸 수 있다. Annual leave의 경우 최소 20일(주당 5일 근무 –> 4주 = 1달)인데, 입사 첫해에는 회사마다 다르게 산정하는 듯 하다. 1년이 지나서야 20일을 주는 회사도 있고, 내가 현재 다니는 회사처럼 입사 직후에 20일을 주는 곳도 있다. 병가는 최대 10일인데, 처음 6개월에 5일, 그 다음 6개월에 5일이 원칙이나,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는 비율별로 산정해서 36.5일 정도 근무하면 1일씩 증가되는 걸로 보인다.

휴가 사용은 상당히 자유롭다. 특히 Sick leave의 경우, 본인 말고 가족이 아픈 경우에도 사용가능하며, 2일까지는 증빙서류 첨부없이도 가능한데, 다른 회사의 경우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배우자/가까운 가족 사망시에 3일/1일 정도의 유급 휴가도 있으며, 출산/육아를 위한 Parental leave도 가능하지만 유급이 아니라 정부가 소득 일부를 보전해주는 방식의 무급휴가이다. 이외에도 Volunteering day라고 해서, Volunteer를 하기 위해 팀별로 신청하면 하루를 쓸 수 있기도 한데, 역시 다른 회사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정리하자면, 보통 20일+10일의 유급휴가가 주어지는데 그 사용이 매우 자유로운 편이다.

참고: http://employment.govt.nz/er/holidaysandleave/

3.출퇴근/근무시간

점심시간 30분은 무급이지만, 오전과 오후에 각각 유급 15분의 휴식이 있고, 공식적으로는 8시간 30분만 일하면 된다.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는 Flexible한 근무를 허용하는데, 근무지에서 거리가 있는 곳으로 이사간 이후 6시 30분~7시 정도에 출근하고 대략  3시 30분 경에 퇴근하는 패턴으로 일하고 있다. 맡고 있는 업무 특성상 외국과의 회의를 위해 특정 시각에는 회사에 있어줘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주 자유로우며, 이러한 점은 휴가가 가장 필요할 때 적시에 사용가능해서 정말 좋다. 작년 초, 육아로 인해 생긴 와이프의 손목 터널 증후군 때문에, 연차/병가를 모두 쓰고도 모자라서 무급 병가까지도 써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다른 가족이 없는 이민 생활에서 이러한 점은 정말 큰 장점으로 보인다.

근무시간 관련해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일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된 시점, 나는 여전히 한국식으로 추가근무를 해가며 맡은 업무 분석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역시나처럼 저녁 6시쯤에 관련 문서를 보며 있는 나에게 매니저가 다가왔다. 무슨 일 하고 있느냐길래 그 당시 작업중인 일을 얘기해줬고, 일의 난이도가 괜찮냐길래, 데드라인이 급박한 일은 아니고 단지 처음이라 잘 몰라서 추가 시간을 할애해서 파악중이라고 답했다. 짧은 대화 이후 그 다음 날, 팀의 리더가 나를 불렀다. 업무가 어떤지, 추가 시간을 꼭 써야만 하는지, 웬만하면 업무시간 중에만 하면 안되겠냐는 거였다. 요청되지 않은 추가 시간 근무는 배정된 시간 대비 업무 난이도가 너무 높거나, 배정된 시간이 너무 짧거나 등을 의미한다는 것이니, 정해진 기한안에 끝내는 데 문제가 없다면 그 시간보다 빨리 끝내기 위해 추가근무를 해서는 안된다는 거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리더의 관리 실수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얘기였다. 그 일 이후 난 한번도 “자발적 추가 근무”를 해본적이 없다.  물론 정말 가끔, 해외 고객 지원을 위해 밤 늦게 머물거나 해본 적은 있지만, 그것은 요청에 의한 추가근무였고, 그 다음날 근무 시간 조정을 통해 어느 정도의 보상이 주어진다. 사실 초반에 초과 근무를 했던 이유는, 90일간의 Probation period 중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한국식”으로 표현했던 것이었는데, 매니저와 리더에 의해 제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로는 근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일하도록 노력중이다.

4.복지
지금 다니는 회사는 사망이나 중대 장애시에 몇년 동안 급여 소득을 보전해주는 단체보험과 건강보험을 지원해주고 있다. 건강보험의 경우 가족도 포함해서 지원되는데, 자기부담금가 20%인 플랜이긴 해도 정말 도움이 많이 된다. 번잡한 시내에 위치하지 않아서인지, 전 직원이 각자 주차 가능한 주차 공간이 제공되고, 커피 머신에 쓰이는 우유는 공짜로 즐겨도 된다. 이외에 자발적이지만 국가에 의해 지원되는 개인연금인 Kiwi saver 가입시 3%를 지원해주는데 이것은 자발적 복지라 아니라 고용주의 의무이다.

5.Probation period

신규 채용시 상호 협의(대부분 회사가 제시하고 피고용자가 수용하는 식이리라)하에 최대 90일(3개월이 아니라 90일)의 Probation period를 갖기로 합의하는 것이 보통인듯 하다. 해당 period동안 문제 발생시 고용주로서는 피고용자에게 이를 알리고 개선할 방법을 협의하고, 개선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며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계약의 종료를 통보할 수 있다. 피고용자 입장에서는 해당 기간 아무 때에나 계약의 종료를 통보할 수 있다. 구직 활동 중에 면접을 보았던 회사와 관련있는 에이젼시이게서, 현재 다니는 회사에 다니는 중에 연락이 온 적이 있다. 최종 2인까지 갔었다가 물 먹은 건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최종 합격했던 사람이 정확히 90일만에 계약의 종료를 통보해왔다는 거다. 나한테 연락한 이유는 당연히 나에게 잡오퍼를 권하기 위해서였는데, 이미 일하고 있다는 얘기에 시무룩해하던 목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참고 : http://findlaw.co.nz/articles/4255/employment-trial-periods.aspx

6.일하는 분위기

역시나 사람에 따라 다르다. 한창 딴짓하는 사람, 정말 몰두해서 일만 하는 사람 등등 다양하지만, 솔직히 다른 동료들이 어떻게 일하는 지 신경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 거 같다. 다만 딴짓하다가 매니저/리더 뜨면 황급히 스크린 전환하는 것도 동일하고…

7.친분/회식/동료들과의 모임/기타

팀별 회식비가 산정되어 반기마다 하는데 보통 점심 먹으러 간다. 가끔 누군가 나서서 저녁 모임을 만들어서 볼링도 한 게임치고 패스트푸드로 저녁도 먹고 그러기도 하고, 주중에 축구 30분 하는 모임도 있고, 예전에는 배트민턴 모임도 있고 하지만 대부분 아시아인(주로 중국/인도)이 주도하는 거 같다. 럭비 월드컵이 열리면, 승리팀 맞추기 같은 이벤트도 직원들이 알아서 하고 일년에 두번 회사 차원의 이벤트(디너와 크리스마스 파티)도 있지만 전원 참석 의무따윈 없다. 안 가는 사람은 아예 안가고, 오라 마라 얘기도 없다. 그래서 동료 사이에 끈끈함은 조금 적은 게 사실이다.

 

더 뭘 적어야 하나 고민이 되는 걸 보니 하고 싶은 얘기는 다 쓴 거 같다. 누군가 궁금해하는 사항이 있다면 댓글을 달면 답해줄 수는 있을 거 같다. 뉴질랜드 사용기를 적고 있는데, 이건 언제나 시리즈를 마무리할 수 있으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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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madforfamily.com/


본의 아니게 글을 옮겼습니다. 

참고해야될 사항이 너무 많아서 혹시나 사라질지 모를 염려에 이렇게 옮깁니다. 

개인적으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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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killed Migrant Category
EOI 점수 140점 이상일 경우 자동 채택되지만, 잡이나 잡오퍼가 없을 경우 최대 9개월까지의 Job search visa(=open work visa)를 주고 구직활동을 하도록 해주며, 구직에 성공할 경우 영주권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방식이다. 140점 미만일 경우는 2주마다 행해지는 채택 과정에서 채택될 수 있지만, 최근 채택 내용을 보면 잡/잡오퍼가 없고 140점 미만인 경우 채택된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참고  History of selection points).

예를 들기 위해, 30대 기혼자, IT관련 학과 학사 졸업, 전공 관련 경력 6년 이상, IELTS 6.5 보유, 현재 한국에서 근무중, 배우자 또한 학사 졸업, 뉴질랜드에는 가본적도 없음으로 가정해보자.

Age : 대략 30대이므로 25점
30 points: 20-29 years
25 points: 30-39 years
20 points: 40-44 years
10 points: 45-49 years
5 points: 50-55 years

Close family : 가족이 뉴질랜드에 없으므로 0점
10 points for close family in New Zealand.

Skilled employment : 잡오퍼 혹은 일하는 상태가 아니므로 0점
50 points: job offer
50 points: working in a skilled job in New Zealand for less than 12 months
60 points: working in a skilled job in New Zealand for more than 12 months.

Bonus points : 뉴질랜드내에서 일하는 중도 아니고 뉴질랜드내에서 일하기 위한 잡오퍼도 없으므로 0점
10 points: work in an identified future growth area
10 points: work in an area of absolute skills shortage
10 points: work in a region outside Auckland
20 points if partner has a skilled job or job offer.

Work experience in skilled employment : 6년 이상이므로 20점
10 points: 2 years
15 points: 4 years
20 points: 6 years
25 points: 8 years
30 points: 10 years.

Bonus points for work experience in New Zealand: 뉴질랜드 가본적도 없으므로 0점
Five points: one year
10 points: two years
15 points: three or more years.

And if the work experience is in an identified future growth area:
10 points: 2 to 5 years experience
15 points: 6 or more years experience.

And if the work experience in an area of absolute skills shortage: 요거(목록)에 해당된다고 가정하여 15점(사실 이 점수가 애매함. New Zealand 내에서 잡이 있는 상태에서만 적용가능한지 헷갈림)
10 points: 2 to 5 years
15 points: 6 or more years.

참고
identified future growth area와 absolute skills shortage 보너스는 동시 신청이 안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자세한 것은 이민 어드바이저를 통해 확인이 필요하다. 동료들 신청하는 걸 보면 대부분 absolute skills shortage로 신청했다고 들었다.

Qualifications : 경력과 연관있는 학사 졸업으로 가정하여 50점
40 points: recognised level 4-6 qualification (e.g. trade qualification, diploma)
50 points: recognised level 7 or 8 qualification (e.g. bachelor degree, bachelor degree with honours)
60 points: recognised level 9 or 10 post-graduate qualification (masters degree, doctorate)

Bonus points for qualifications: absolute skills shortage에 해당하는 학사 졸업으로 가정하여 10점, 그리고 배우자가 학사 졸업한 것으로 가정하여 20점
10 points: two years full-time study in New Zealand completing a recognised bachelor degree New Zealand qualification
10 points: One year of full-time study in New Zealand completing a recognised post-graduate New Zealand qualification
15 points: two years of full-time study in New Zealand completing a recognised post-graduate New Zealand qualification
10 points: qualification in an identified future growth area
10 points: qualification in an area of absolute skills shortage
10 points if your partner holds a level 4-6 qualification
20 points: if your partner holds a level 7+ qualification

It’s time of truth. 이제 점수를 계산해보자.
나이 25점
경력 20점
본인 absolute skills shortage 경력 보너스 점수 15점
본인 학사 졸업 50점
본인 absolute skills shortage 학력 보너스 점수 10점
배우자 학사 졸업 보너스 20점
= 140점

엇? 140점이 나왔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로 보인다. 부부 모두 고학력자이며, 주 신청자의 경우 absolute skills shortage에 속하는 학력 보유 및 연관있는 분야에서 6년 이상의 경력이 있다.  잡/잡오퍼가 없기는 하지만 140점이 나오는, 뉴질랜드 이민성이 추구하는 Skilled Migrant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싱글이라면 배우자 학력 보너스 점수 20점이 없으므로 120점에 머물게 된다. 그렇다면 이 점수를 채워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2.Working Holiday Visa
만 30세이하라면,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최적일듯 하다. 27세부터 30세까지 3년 정도의 경력을 쌓은 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구직활동을 해보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한-NZ FTA 발효 이후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주요 제약 사항이었던, 한 고용주별 3개월 근무 제약이 사라진다고 한다. 사실 그 제약이 있더라도, 괜찮은 경력(3~5년)이 있다면 취직이 아예 안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구인 공고가 뉴질랜드에서 일할 수 있는 비자 소지자(시민권자, 영주권자, 워크비자)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명시하는데,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그 중의 하나가 아니기는 하다. 그래도 정말 회사가 원하는 인재라면, 계약직 채용 후 영주권이 나오면 permanent로 전환해주기도 하는 거 같다. 같은 날 입사한 회사 동료가 바로 이 케이스이다. 3개월 제약이 사라진다면, 가장 손쉬운 방법일듯 하다. 도전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물론 만 30세 미만인 경우에 한해서이다.

3.학교/과정 다니는 중 혹은 졸업 후 Job Search Visa로 구직활동
잡오퍼 없이 EOI 140점이 안되는 경우 달리 해볼 수 있는 건, Job search visa가 나오는 과정을 등록하여, 학교에 다니는 중 혹은 수료 후 job search visa 기간내에 구직에 성공하는 방법뿐이다. 물론 Job search visa가 나오지 않는 과정을 등록하여 과정을 다니는 중에 시도해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 확률이 쉽지는 않을듯 하다.

능력이 좋다면, 학교에 다니는 중에도 바로 Full-time permanent job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회사 동료 중 한명이 시도했던 파트타임에서 정규직으로 점프를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sjs.co.nz는 학생들 혹은 파트타임 잡에 특화된 job search site이다. 회사 동료도 이 사이트를 통해 파트타임잡을 한 후 바로 정규직으로 전환된 케이스이다. 이 마저도 안되면, 수료 후 나오는 job search visa 기간 동안 구직활동에 전념하는 수 밖에는 없다.

4.Open Work Visa via partnership
싱글을 위한 마지막 방법은 partnership을 통한 길이다. 한국에서도 안 생기지만, 혹시 뉴질랜드에서는 생길 수도 있으니까 고려해볼 수 있다. partnership을 통해 얻을 수 있는 open work visa는 강력하고 빠른 방법 중 하나일듯 하다. 2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번째는 partnership open work visa로서 partnership 관계에서 대략 수개월 이상(6개월?)이상이면 신청 가능하다. 두번째는 partnership residence visa인데, 1년 이상의 partnership 관계를 요구한다. partnership이란, 지속적인 동거 관계를 의미한다고 보면 좋다. 동거 상태임을 증빙하기 위한 공동명의 주거 계약서, 공동 명의의 전기/수도/인터넷/전화 등의 고지서, 공동 생활비의 흐름을 보여줄 수 있는 공동 명의 계좌, 부모/친구 등의 레터, 사진 등이 일반적으로 증거자료로 사용된다. 한국에서의 동거도 가능하지만, 공동명의의 자료(주거계약서, 계좌 등)가 없다면 인정받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partnership을 서포트하는 main applicant가 최근 몇년 사이에 다른 누군가를 support해준 적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Visa 지원을 빌미로 한 부적절한 관계를 방지하는 조항으로 보인다.

IT분야 종사자가 얻을 수 있는 잇점은 엄청나다. Absolute skills shortage에 속한다면, 고용주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이, 레터 써주는 일 밖엔 없다. 그 이외의 직업군의 경우, 외국인(시민권자, 영주권자, 워크비자 소지자 제외한 나머지) 고용을 위해서는, 해당하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증거자료가 필수이다. 이를 위해 구인 광고를 일간지나 인터넷 사이트 등에 합리적인 기간 동안 공지해야 하고, 이 기간 동안의 노력 이후에도 적절한 사람을 찾지 못했음을 증빙해야 하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험난한 과정이다. Labour market search라고 불리는 이 조건은 내국인(다시 말하지만 시민권자/영주권자/워크비자 소지자)을 최우선 고용하도록 하는 안전장치이다. 이 조항이 Absolute skills shortage 직업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혜택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은, 가능한 방법만을 제시해보기 위함일뿐 부정확한 내용이 없다고 확언할 수 없는, 그저 추정에 불과하다. 정확한 것은, 뉴질랜드 이민성에 등록된 이민 어드바이저를 통해 얻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데, 인터넷에 올려진 얼굴도 모를 누군가의 글을 읽고 실행에 옮기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댓글이나 메일로 알려주시면 업데이트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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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madforfamily.com/


본의 아니게 글을 옮겼습니다. 

참고해야될 사항이 너무 많아서 혹시나 사라질지 모를 염려에 이렇게 옮깁니다. 

개인적으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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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리크루팅 에이젼시와 인터뷰를 가졌다. 내 경력은 대부분 웹개발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Java를 가지고 몇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 에이젼시 직원은 3.5년 정도되는 기간의 내 Java 경력을 가지고 어느 회사와의 인터뷰를 주선해 주었다. 너무 자신이 없어서 미리 에이젼시에게 언질을 해두었지만, 내 예상대로 인터뷰는 엉망진창이었다. J2EE나 Spring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여서 많은 질문에 해본적 없고 모른다라고 대답해야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에이젼시에게 전화를 걸어서 참담했던 인터뷰 내용을 얘기하며 약간의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실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해본 적도 없는 분야의 인터뷰를 왜 내가 나가야 했을까? 에이젼시 말만 믿고 선뜻 따랐던 내 미련함을 탓하는 게 나을 거 같았다.

황가레이 구인을 진행하던 에이젼시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내심 기대했었던 터라 더욱 긴장이 되었다. 결과는 무승부(?)였다. 최종 후보자 2명에 대해 회사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끓어올랐던 흥분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최종 결정을 위해 한번 더 테스트를 제안한다는 것이었다. 승낙하지 않으면 다른 후보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니, 그냥 받아들이라는 의미였다. 코딩 테스트였는데, 코딩 중간 중간과 결과 중간 중간을 빈칸으로 만들어서 채우는 문제였다. 인터넷 서비스 뿐만 아니라 VoIP 기반의 전화 서비스도 하는 터라, 무슨 전화 번호 지역 분류 같은 코드였다.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24시간을 준다고 했는데, 문제를 받자 마자 대충 결론 추론 및 역산에 의한 검증을 하면서 뚝딱 뚝딱 채워서 결과를 보냈다. 사실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걸 결정하려고 또 테스트를 요청했다는 사실이 조금 그랬다. 한 달 가까이 기다린 결과가 무승부여서 더 그랬던 거 같다.

지친 마음도 달랠 겸해서 나선 코로만델 여행 중에 들른 한 여행지에서 느닷없이 전화 한통을 받았다. 신생 한인 호스팅 업체의 이사(?)라는 사람과 잠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뜬금없이 영어 테스트를 전화로 한다며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외국인과 그다지 조용하지 않은 야외에서 몇 마디 대화를 나눴다. 사전 협의없는, 전화에 의한 영어 테스트를 받고 나니 짜증이 텍사소 물떼처럼 몰려왔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 그 이사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다시 왔다. 해당 업체 대표와 인터뷰를 하자는 거다. 목구녕이 포도청인지라 언짢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어느 커피숍에 시간 맞춰 나갔다.

해당 업체는 이제 막 시작했는데, 개발하던 사람이 그만두면서 그를 대체할 다른 개발자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업체의 대표는 모 업체를 이미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했고, 이사라던 사람은 그 과정을 도와주는(?) 거라고 했다. 이것 저것 질문과 대답이 오가다가 연봉 얘기가 나왔다. 한국에서 받던 연봉을 묻더니, 그 정도를 NZ 달러로 줄 수 있다는 거다. 즉 한국에서 1000만원 받았다면, 뉴질랜드 달러로 1만불 주겠다는 거였다. 곤란하다고 했더니 최저 희망 연봉을 얘기해보라고 했다. 막상 얘기했더니 대표라는 사람이 얼굴 표정이 바뀌면서 갑자기 영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영어가 모자라서 일을 혼자서 처리못할테고, 그로 인해 통역을 고용해야 하는데 누가 그 돈(내가 얘기한 최저 희망 연봉)을 주겠냐는 거다. 원하는 그 연봉 받기는 거의 불가능이고 노느니 자기네 회사가 주는 월급이라도 벌면 수당도 받으면서 그럭저럭 생활이 될테고, 그러면서 현지 경력도 쌓는 게 좋지 않겠냐는 충고섞인 제안이었다. 이쯤되면 판이 깨지고도 벌써 깨졌다 싶어서, 통역을 고용해야 할 정도의 영어실력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셨고, 그걸 더 보강한 후에 구직활동을 하는 게 낫겠다는 완곡한 거부의사 표현을 함으로써 인터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굶어죽더라도 어려운 사정에 처한 이민자들에게서 피를 더 뽑으려고만 하는, 코딱지만한 한인 업체에는 절대 지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도 그 업체는 교민들이 많이 가는 인터넷 사이트에 한동안 구인광고를 계속 올려댔다. 많은 일을 바로 할 수 있는 경력자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제시할 연봉은 고작 생활비 밖엔 안되는 수준이면서 말이다. 게다가 인터뷰 도중에 연봉 얘기, 그것도 구체적인 금액을 가지고 연봉 얘기를 해본 건 정말 처음이었다.

씁쓸한 경험 뒤에 걸려온 에이젼시의 전화 한 통. 자바 개발자 인터뷰를 추진했던 그 에이젼시였다. 지난번엔 미안했다면서 이번에는 “Easygoing”라고 했다. 다시 한번 겁(?)을 줬는데도 자신있어하길래 인터뷰를 약속해주었고 얼마 뒤에 인터뷰 날짜와 장소를 통보받았다. 인터뷰가 하루 종일이라고 했다. 살 던 곳에서 꽤나 떨어져 있는 회사였다. 버스를 1번 갈아타고도 꽤나 걸어가야 했다. 아침 일찍 시간 맞춰 가서 미리 가글도 하고 수분 보충도 해뒀다. 9시가 되자 누군가 와서 나를 데리고 회의실 같은 곳으로 갔다. 회사 소개를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엔 DB 설계 테스트가 이어졌고 끝난 이후에는 그 회사 직원 2명과 같이 회사 밖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기다리던 전화였다.

황가레이 업체의 구인을 진행하던 그 에이젼시였다. 드디어 회사가 결정을 내렸고, 최종 후보자는 나라고 했다. 나는 결과를 30분 이내에 제출했고 정답률 95%(한 문제 검산을 잘못 한듯 했다)였고, 다른 후보자는 정확히 24시간만에 제출해서 100% 정답이었다고 했다. 왜 나를 선택했느냐고 되묻자, 30분만에 답안을 모두 제출했으며, 실수라고 보여지는 5%의 오답을 제외하면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흥분을 가라앉혀야 했다. 하고 있던 인터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에이젼시에게, 지방으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라서 아내와 얘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그날 저녁까지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타당해보이는 이유때문이었는지 에이젼시는 그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점심 식사를 마친 이후엔 개발 관련 인터뷰와 일반 인터뷰가 이어졌다. 오랜 인터뷰 동안 땀이 정말 많이 났다. 마지막은 Paper coding 테스트였다. 해당 테스트를 진행하던 직원에게 답안지를 내며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사실 다른 회사로부터 잡오퍼를 방금 받았는데, 만일 이 회사가 나를 채용한다면 나는 이 회사에 꼭 다니고 싶다. 그러니 가부 결정을 서둘러 주었으면 한다고 약간의 “호언장담” 같은 부탁이었다. 모든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 밖을 나서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몰아쳤다. 한참 더운 여름의 낮 날씨였는데,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도중에 만난 그 잠깐의 소나기를 맞고 옷이 흠뻑 젖었다. 불길했다. 안될꺼야, 회사를 협박하는 구직자라니, 내가 생각해도 건방져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한 후 흥분한 마음을 달래며 영어 공부도 하고 졸기도 하는데 느닷없이 휴대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날 인터뷰를 봤던 회사의 개발 매니져였다. 연봉을 포함한 모든 과정이 거의 끝나가는데 기다려달라는 것이었다. 2 시간 정도 후에는 다시 전화가 와서 스캔한 고용계약서를 이메일로 보냈고, 종이로된 원본 계약서는 Courier로 보냈다는 것이었다. 알았다고 담담히 대답하며 전화를 끊고는 소리없는 환호를 질러댔다. 황가레이 업체쪽 에이젼시에게 전화를 걸어서 다른 회사로 가기로 했다고 얘기를 해야 했다. 아마 최종 후보자 중 다른 이에게도 좋은 일이 되었을 거 같다.

그 날 저녁 와이프는 늘 그랬던 것처럼 녹초가 되어 퇴근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강 이랬던 거 같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뭘 먼저 듣고 싶냐고. 와이프는 늘상 좋은 걸 나중을 위해 아껴두니까, 당연히 나쁜 소식을 먼저 물었다. 와이프가 가고 싶어하던 황가레이 지역 업체에게서 잡오퍼를 받았는데 안 가기로 했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럼 좋은 소식은 뭐냐고 묻는 질문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오클랜드의 다른 업체를 선택했다고 했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던 Job hunting은 그렇게 끝났다.

와이프가 영주권을 따기 까지, 내가 직장을 잡기 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느끼는 단 하나의 생각, 그것은 “기회는 여기 저기 널려 있지만 준비된 사람만 그것이 기회라는 걸 알아채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라는 점이다.

와이프는  뉴질랜드 정규 간호사가 되기 위한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뉴질랜드로 왔지만, 필요한 영어 점수를 채우기에는 실패했다. 포기하기 직전에 휴가를 몰아써서 뉴질랜드 북섬 남섬을 같이 돌아다녔다. 그리고는 내가 한번만 더 해보자고 설득해서 한 텀을 더 학원에 등록했다. 그 때까지 해왔던 게 아쉽지 않도록 2년을 채우자고 설득했었다. 그 마지막 텀에, 그전에 와이프가 자원봉사를 했던 disabled adult 시설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뽑힌 건 다른 사람이었다. 시간이 흘러 한참 후에 다시 걸려온 그 시설의 전화. 이번에는 진짜였고, 그렇게 워크비자를 땄고, 나를 뉴질랜드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영주권을 위해서는 영어점수가 필요했고 딱 1번의 기회를 부여받았고 피말리는 공부속에 결국 성공했다. 10년 넘는 간호사 경력, 그 바쁜 생활속에서 따두었던 사회복지학과 석사 졸업장과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더불어 자원봉사 경험, 간호사 등록을 위해 공부했던 영어실력이 어울어졌기엔 잡을 수 있던 기회라고 생각된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수 많은 좌절과 실패, 시행착오가 없었다면, 그 길고 긴 6시간 넘는 테스트와 인터뷰들을 자신감있게 해내지 못했을 거 같다. 첫 전화 인터뷰에서 느꼈던 무서움, 첫 Paper coding에서 느꼈던 무너진 자존감, 첫 대면 인터뷰에서 느낀 부족한 영어 능력 등이 다시 부메랑으로 나에게 돌아오면서 그 기회를 가져다 준 거 같다. 물론 운 99%, 내 실력 1%임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99%의 운도, 내 1%의 실력이 없었다면 아마 무의미했을 것 같다. 다시 되돌아봐도, 만약, 황가레이건이나 지금 다니는 직장의 인터뷰가 첫번째, 혹은 두번째 인터뷰였다면 나는 거기서 모두 실패했으리라 확신한다. 백번이 넘는 입사 지원, 수 십번의 전화 인터뷰, 십여번의 리크루팅 에이젼시 인터뷰, 열 번 가까운 온라인/Paper Coding 등의 테스트, 열 몇번의 기업과의 대면 인터뷰를 거치면서 변화된, 준비된 상태였기에, 찾아든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실패와 좌절이 두려워 확실해 보이는 것만, 될 거 같은 것만 했다면, 덜 좌절하고 덜 실패했을 수 있을 수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그동안 사용했었던 조그마한 수첩과 블로그에 짬짬이 적어두었던 기록들을 보며 기억을 뒤새기며 이 취업기를 써내려왔다. 장황하게 내가 거쳐온 과정을 늘어놨으니 실제 도움이 될만한 무언가 또한 내놔야 할 거 같은 부채감이 든다. 그래서 다음에는 좀 더 실전에 가까운 내용들을 적어봐야 겠다. CV와 Cover letter, 전화 인터뷰 대처 방법, 내가 치뤘던 각종 테스트들, 뉴질랜드 이민을 위해 IT종사자가 선택 가능한 방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난 20개월의 직장생활에 대해서, 내가 경험한 선에서 기술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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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madforfamily.com/


본의 아니게 글을 옮겼습니다. 

참고해야될 사항이 너무 많아서 혹시나 사라질지 모를 염려에 이렇게 옮깁니다. 

개인적으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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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우 2017.01.11 22:22 신고

    IT진로를 계획하는 스무살인 저에게도 정말정말 좋은내용이네요 저한테도 그 노력과 교훈이 느껴져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버렸다. 어느덧 뉴질랜드는 holiday 시즌을 맞이하고 있었다. 11월 말이 되어가자 신규 등록되는 구인공고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휴가철이니 새로운 구인건은 내년으로 미루는 거였을 것이다. 그래서 시간을 잡아서 와이프 휴가 기간 중에 와이프 친구 부부와 함께 북섬의 북부 지방으로 짧게 여행을 갔다.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있어서 북쪽으로 갈수록 더 따뜻해지는데, 안 그래도 햇살 강한 여름인데 더 북쪽으로 가서 그런지 덥기까지 했다. Paihia와 Kerikeri, 90 mile beach(실제론 67mile 정도?)와 타즈만해와 태평양이 만나는 cape reinga 등을 여행했다. 백패커에서는 주인장이 잡아온 커다란 스냅퍼(도미류) 일부를 받아서 회로 먹는(아 초고추장이 없었다 ㅠ.ㅠ) 행운도 누리고, 90 마일 비치에서는 모래사구에서 샌드 슬라이딩도 즐기고, 그럭저럭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비록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찝찝한 무언가가 가득했지만.

휴가 시즌이 끝나갈 무렵 다시금 Job hunting에 박차를 가했다. 올라오는 모든 구인공고에 지원서를 보냈다. Position도 가리지 않고, 지원분야도 좀 광범위하게 잡아서 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전화 한통. 중년 여성의 목소리였다. 약속을 잡고 집 근처 카페에서 인터뷰를 했다. 인터넷 호스팅 업체의 구인건인데 내 경력이 잘 맞을 거 같다고 하는 것이었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호스팅 업체와의 인터뷰 준비를 철저히 했다. 회사의 구인 공고, 지원자 요건, 사업 내용, 내 경력이 어떻게 매칭될 것인지, 어떤 걸 공헌할 것인지, 내가 그동안 해왔던 업무 스타일이 어떻게 해당 회사와 조화될 지, 어떻게 업무를 관리해왔는지 등에 대해서 준비했다. 인터뷰 당일,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회사의 한국인 스태프였다. 젊어 보이는 한국인 직원이었다. 팀장(?), 해당 업무를 하는 다른 직원, 한국인 직원과 나, 이렇게 4명이서 화기애애하게 인터뷰를 해나갔다. 해본 적 없는 것, 해본 적 없지만 공부해 본 것,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얘기했고, 해본 일, 잘하는 일에 대해서는 자신감있게 내 의견을, 서투른 영어로 피력했다. 인터뷰 결과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느낌이 좋았다.

호스팅 업체의 인터뷰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지원과 인터뷰를 계속 해나갔다. 웹 분야에도 지원을 많이했었는데, 그 중 한 웹 전문 에이전시와의 인터뷰가 잡혀서 오클랜드 시티로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갔다. 조금은 복잡한 건물이라서 길치인 나에게는 고난이었지만, 다행히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해당 에이젼시의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해보니, 거의 1인 기업 분위기였다. 게다가 감기가 걸린 상태라서 그런지, 인터뷰도 대충 대충하더니 감기 때문에 더 하기 힘들다면서 다음에 날 잡아서 계속 하자고 중단을 요청했다. 기분이 굉장히 나빠졌다. 아무리 약자 입장의 구직자라지만, 그 인터뷰를 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어느 정도의 규모가 있는 에이젼시인지도 확인해보기로 했다. 물론 다음 인터뷰 날짜는 내가 확정해주지 않았다. 그냥 다음에 하자고 하고 나왔다.

기대했던 웹 호스팅 업체와도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메일 대신에, 그 에이젼시가 전화를 해왔다. 다른 후보자가 있었는데, 아주 조금의 차이로 그 후보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근소한 차이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최종 후보자 2명 중 한 명이 되었었다는 사실로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가진 경력이 그다지 부족하지 않다는 걸, 내가 해낸 그 장시간의 인터뷰가 너무 꽝은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실패를 거듭하다보면 주눅이 들게 마련이지만, 실패로부터 배워나간다면 조금씩 기회를 더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시 지방에 위치한 기업과의 인터뷰가 잡혔다. 이번에는 전화 인터뷰 후 직접 회사로 오라고 했다. 물론 교통비라든지에 대한 지원은 있다고 했다. 처음으로 혼자 지방가는 버스를 타고 황가레이로 갔다. 도착 후 걸어서 회사 근처로 도착하니 시간이 좀 남았다. 점심 시간 끝나고 바로 인터뷰라서 근처 스시집에 들려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들려보니 조그마한 테이크아웃 전문 스시집이였다. 딱 봐도 한국인 직원이었다. 그래도 스시를 사려고 줄 서 있는 현지인들 때문에 그냥 영어로 간단히 결제하고 식당 앞에 놓여져있던 조그마한 탁자에 앉아 점심을 해결했다.

근처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고 가글도 하고 시간에 맞춰 회사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는 작은 규모였지만 그래도 조금은 오래된 회사인듯 했다. 북섬에서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의 독점 기업인듯 했다. 개발 팀장과 직원, 에이젼시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참석한 면접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Problem solving 테스트였다. 개발 관련한 상황 3가지를 주고 어떻게 구현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간략하게 구성도라던지, 계획을 해보라는 것이였다. 익숙한 상황들이라서 늘상 해왔던 대로 슥삭 결과를 적어나갔다. 시간이 흘러 다시 들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내가 보기에도 수긍하는 표정들이었다. 개발 팀장이 직원에게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그 직원이 괜찮아 보인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았다. 그 이후에는 긴 인터뷰가 이어졌다. 내 경력, 업무 방법, 개인적인 성격에 대해서 하나 하나 물어보고 답하고 하는 시간이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니 100불 짜리 기프트 카드를 받았고 부푼 기대감을 가슴을 묻은 채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언어 교환 만남을 하는 친구가 다니는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코딩 테스트를 보라는 것이였다. 이번에는 열심히 치뤘고, 그 이후에 인터뷰가 잡혔다. 회사에 가보니 규모가 꽤 되는 튼실한 회사였다. 사무실안은 자유스러운 분위기였다. 웹 개발자들은 해밀턴 지사에 주로 있어서 화상 회의와 함께 개발자 3명이 동석해서 면접을 봤다. 면접 내내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고 그런대로 잘 치룬듯 했다. 하지만 결국은 떨어졌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부족으로 인해 합격하지 못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 친구에게 얘기하니, 인터뷰에 참석한 사람 중 4명은 내 영어 보다도 떨어진다면 말도 안된다며 화를 냄으로써 나를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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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해야될 사항이 너무 많아서 혹시나 사라질지 모를 염려에 이렇게 옮깁니다. 

개인적으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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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좀 나아지면서, Job hunting을 계속했다. 주로 Recruiting agency가 올린 구인광고들에 지원하다가, 업체가 직접 올린 구인 광고에도 지원해보기 시작했는데,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대면 인터뷰 2건을 따냈다. 인터뷰 준비를 위해 해당 회사 사이트의 내용을 열심히 요약하고 내 경력/스킬이 어떻게 매칭될 것인가에 대해 얘기할 것도 준비했다.

드디어 2번째 대면 인터뷰.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회사에 들어가자 마자 종이로 된 시험지를 받았다. 편안하게 추스렸던 마음이 엉망이 되었고, 준비했던 내용들도 연기처럼 다 사라져 버렸으며, 시험 또한 엉망으로 치뤘다. 시험 이후 가진 인터뷰에서 최선을 다해 안간힘을 썼지만, 제일 중요해 보였던 마지막 질문에, 전혀 준비한 것과 다르게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내뱉고 나오고 말았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역시나 이틀 후, “Unfortunately…unsuccessful…”이라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3번째 대면 인터뷰를 위해 다시 회사 정보 수집 및 대답할 꺼리를 준비했다. 아예 스크립트를 만들어서 외워서 그럭저럭 잘 해낸듯 싶었지만 역시나 결과는 실패. 점점 자신이 없어져 갔다.

영어 사용 시간을 늘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언어 교환 사이트들을 탐색했다. 그 중 괜찮아 보이는 mylanguageexchange.com에 등록 후 한국어 사용을 원하는 50대 아저씨에게 연락을 시도해봤다. 몇일간 무응답이었다. 그런데 몇 일 뒤 IT분야에 근무하는 왠 남성이 메일로 접촉을 해왔다. 카카오톡을 사용한다고 해서 아이디를 등록 후 이것저것 탐색을 해보니 괜찮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로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나서 주말에 시티에서 처음으로 언어교환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기대와는 달리 그는  kiwi(뉴질랜드 사람들은 본인들을 kiwi라고 부름)는 아니였고 Latvia 출신의 40대 SW 개발자였다. 오클랜드 시티에 위치한 모 IT업체에 근무중이었고, 취미삼아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했다. 1시간은 한국어 가르쳐주고 나머지 1시간은 영어로 대화 좀 하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직장 구한다는 얘기에, CV 한번 봐준다고 해서 메일로 보냈더니 Skill matrix를 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해서 일목요연하게 프로젝트, 사용한 기술 및 업무를 테이블로 만들어서 CV에 넣었다. 그리고 자기가 다니는 회사도 구인중이라며 자기 추천으로 회사에 넣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헤드헌팅업체말고 직접 구인하는 업체에 주로 지원하라는 조언도 받았다. 오죽하면 seek.co.nz에서 리크루팅 에이젼시가 올린 구인공고만 삭제해서 보여주는 브라우저 플러그인(userscript)을 만들었을까 싶다.

리크루팅 에이젼시와의 전화 인터뷰나 대면 인터뷰를 하다보면 늘 듣게 되는 Local experience. 나 같은 새내기 이민자에게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자원봉사 경험이라도 쌓아두자는 생각에 여기 저기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낸 사이트가 volunteernow.org.nz다. 거길 통해서 volunteeringauckland.org.nz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온라인으로 회원가입하고 신청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어서 재촉메일을 보내야 했다. 그 다음 날 전화로 연락이 왔는데, 직접 직접 사무실로 방문해서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했다. 뭐든 쉬운 게 없나보다 싶었다. 약속한 날짜에 사무실로 방문하니 백발의 할머니들이 자원봉사를 하고 계셨다. 그분 중 한 분과 상담을 해서 구세군쪽에서 진행하는 elder people에 대한 be-friending 파트에 지원했다. 일부러 IT업계와 상관없는 일에 지원했다. IT보다는 언어를 늘리는 게 순서일듯 해서였다. 신청 후 2주가 넘은 시점에 구세군측에서 전화가 왔다. 주소가 잘못 된 거 같아서 확인 전화를 해온 것이다. 주소를 정정해주고 나니 몇일 안에 겨우 신청서류를 보내줬다. 뭐 쉬운 게 어디 있으랴마는 뉴질랜드에서는 뭐든지 인내심과 시간을 요구하는 거 같다.

지역 가리지 않고 지원하다보니, 어쩌다 남섬에 위치한 조그마한 업체와 skype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아침 10시에 상의만 셔츠를 걸치고 땀 뻘뻘 흘려가며 인터뷰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인터뷰하고 있는 나를 누군가 봤다면 참 어이없었을 것이다. 하의는 반바지 차림이었으니까. 몇 일 후에는 크라이스트처치(남섬에서 제일 큰 도시)에 있는 어느 업체의 개발 이사가 오클랜드로 구직자를 만나러 올라와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오클랜드 시티 도서관 내의 커피숍에서 2시간 넘게 면접을 치뤘다. 엄청 많은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같기에 사실 결과에 대해 처음으로 기대를 걸어보았지만 역시나 결과는 늘 그랬듯 실패였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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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madforfamily.com/


본의 아니게 글을 옮겼습니다. 

참고해야될 사항이 너무 많아서 혹시나 사라질지 모를 염려에 이렇게 옮깁니다. 

개인적으로 읽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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